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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호의 영화먹방映畫墨房] <극한직업>, ‘정통’ 코미디를 향한 한국영화의 극한도전
  • 김권호 아마추어 영화먹방러
  • 등록 2019-02-22 18:12:01
  • 수정 2019-03-07 14: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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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畫墨房[영화먹방] - 아마추어 영화먹방러의 검은도서관(墨房) 관람기

사람을 재미있게 하고 웃게 만드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그것도 두어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웃게 만드는 것을 일생의 업으로 삼아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극한직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2019년 벽두부터 천만 기록을 가뿐하게 돌파한 영화 <극한직업>이 이루고 있다. 며칠 전에는 개봉 20일 만에 관객 수 1,30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인구 65만의 천안 시민들(2017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이 매일 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은 셈이다.


CJ엔터테인먼트=연합뉴스 제공

빵빵 터지는 웃음을 잔뜩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은 치밀하게 계산하고 ‘고뇌’를 거듭하면서 고독한 결정을 반복했을 이병헌 감독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극한직업>은 ‘정통’ 코미디를 추구하는 영화답게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활용하는 면면이 돋보인다. 마약반 고반장(류승용 扮)이 강력반과의 경쟁 구도에 내밀려 실적과 승진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가족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장으로 묘사되면서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쉽게 동일시하는 관객들의 공감대를 얻는다. 


왕갈비통닭 맛의 비법을 개발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한 마형사(진선규 扮)가 잠시(!) 형사의 본분을 잊고 마작을 즐기면서도 중국어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사건의 단서를 얻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진선규 배우의 전작 <범죄도시>(2017)에서 내뿜던 카리스마가 이 영화에서 기시감처럼 작용하면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역시 마형사가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용의자들을 감시할 때 자신의 방을 엿보는 줄 오해하고 경악하며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치는 장면에서 신신애 배우는 찰리 채플린 시대의 무성영화에 즐겨 등장했던 과장된 표정연기의 향수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CJ엔터테인먼트=연합뉴스 제공

영화는 세심하게 설계된 캐릭터들과 함께 맛깔 나는 ‘생계밀착형’ 대사들이 한데 어우러져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이미 <스물>에서부터 등장인물들이 속사포처럼 그러나 때로는 혼잣말인 듯 내뱉는 세상살이와 인물들에 대한 넋두리들로 가득하다. 이병헌 감독 영화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도 있을 텐데, 귀와 가슴에 쏙쏙 박힐 것 같은 명대사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메모광 관객이라면 영화 보는 내내 공책을 꺼내 맘에 드는 대사를 일일이 적어놓고 싶어지는 충동을 참느라 고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주연과 조연 배우들뿐만 아니라 작은 역에 불과한 조직원들 사이에서 치고받는 대사들까지도 특유의 유머와 재치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이쯤 되면 과연 누가 더 극한직업을 가진 사람인지 등장인물들끼리 서로 내기라도 할 지경이다. 파리만 날리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를 운영해야 하는 치킨집 사장인지, 왕갈비통닭의 참신한 맛에 전국은 물론 외국에서까지 입소문을 듣고 가게 문에 쏟아져 들어오는 손님들 때문에 장사가 너무 잘 된다며 걱정하면서도 콧노래와 함께 돈다발을 세는 잠복경찰관들인지, 사무실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실적도 올리지 못하는 부하직원들을 둔 경찰서장인지, 보스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IPTV 시청으로 시간을 죽이며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동거를 하고 있는 자칭 ‘강력반’(주먹 쓰는 깡패들)과 ‘마약반’(약쟁이들)인지. 


범죄조직은 마약 유통으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치킨가게를 운영하는 잠복형사들은 이들을 일망타진해 고반장의 승진은 물론 실적 부족으로 존폐의 기로에 놓인 마약반까지 살려내야만 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등장인물들의 상반된 욕망과 극한의 위기들이 한데 뒤엉키면서 커다란 재미와 웃음을 선사한다.


지금까지 이런 코미디는 없었다. 한국영화계에서 신파적 요소를 담지 않은 채 오롯이 웃음만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정통’ 코미디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한국사회의 압축적 성장가도에 지친 대중들은 웃겨주는 영화들을 꾸준하게 갈구해왔다. 하지만 ‘정통코미디’를 제대로 만끽하기에는 몇 가지 장애 요인들이 있었다. 


첫째, 급격한 변동과 압축적 성장을 거치는 동안 배꼽을 잡을 만큼 웃기고 또 풍자할 대상들은 차고 넘쳤지만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에 대한 풍자나 조롱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다. 웃음의 소재로 빠질 수 없는 정치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단속되기 일쑤였고, 결국 한국 코미디영화에서 풍자나 해학의 요소는 사실상 소거되고 말았다.


둘째, 주기적으로 반복되다시피 하는 각종 참사와 재난 때문에 한국의 관객들은 내내 웃기만 하는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우회로는 신파적 요소를 담은 코미디였다. 관객들은 웃기다 울리며 ‘항문 발모’를 부추기는 ‘한국적인’ 코미디에 만족해야만 했다. 물론 최루성 코미디물도 한 많고 사연 많은 한국 관객들의 시린 가슴을 달래주며 웃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은 현실성을 획득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웃다가 극장 문을 나설 수 있는 영화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어왔다. 마침내 그러한 영화에 대한 갈증은 천만 관객을 불러 모은 <극한직업>을 통해 어느 정도 해갈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병헌 감독 (연합뉴스 제공)이병헌 감독의 첫 번째 상업영화 <스물>(2015)은 스무 살 청춘들을 다룬 성장드라마였다. 고등학교 같은 반 출신의 대학생, 재수생, 청년백수로 이루어진 친구들의 이야기에서는 이른바 ‘실패자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서글픈 현실 때문에 감정이 무너져 내릴 법한 장면에서조차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힘들다고 울어 버릇하지 마. 어차피 내일도 힘들어” 따위의 대사를 날리며 신파가 파고들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영화 속의 영화감독이 술자리에서 수학 점수와 과외로 대학 입학과 인생의 성공여부를 따지면서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한국사회를 향해 “어른이 될 생각은 안 하고 부자 될 생각만 하고 있으니…”라며 마음속의 분노를 표현하는 대사는 신랄함이 벼려져 있다.


데뷔 작품이 소수의 관객들이 열광하는 컬트영화의 냄새를 물씬 풍겼음에도 후속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병헌 감독에게는 행운이었던 것 같다. 바람 많은 제주도를 배경으로 결혼생활과 외도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위기의 부부를 다룬 <바람 바람 바람>(2018)을 보는 동안에는 그의 필모그래피가 지속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병헌 감독은 전작들의 관심과 흥행실패로 인한 부담감을 모두 훌훌 털어내면서 그러한 우려가 기우였음을 천만 관객 달성을 통해 당당하게 증명하고 있다. 오히려 이병헌 감독의 작품세계가 한층 더 풍부해지고 영리해지고 있음을 <극한직업>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극한직업>에서 보여준 유쾌한 질주를 되살려 정통 코미디를 이어나갈 시도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병헌 감독에게는 부디 천만 관객이란 금자탑에 머물지 않고 관객들을 웃길 수 있는 정통 코미디를 지속하는 여정이 계속 되기를 기대해 본다. 우동가게를 운영했던 감독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 냈다는 ‘소상공인들은 목숨 걸고 한다!’는 고반장의 대사는 정통 코미디를 위해 목숨 걸고 매진하겠다는 다짐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힘을 내요, 이병헌 감독!’


글 김권호

(아마추어 영화먹방러 | kinoreade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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